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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10경···浪漫 그리고 風流

2016년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바 있는 ‘자연치유 도시’ 충청북도 제천. 이곳은 동쪽으로는 단양과 영월, 서쪽으로는 충주, 남쪽으로는 문경, 북쪽으로는 원주와 접한다. 때문에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담당해 왔다. 최근에는 패스형에서 체류형 관광지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낭만(浪漫)과 풍류(風流)가 넘치는 ‘제천 10경’은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에 ▲1경 의림지 ▲2경 박달재 ▲3경 월악산 ▲4경 청풍문화재단지 ▲5경 금수산 하늘정원 ▲6경 용하구곡 ▲7경 송계계곡 ▲8경 옥순봉 ▲9경 탁사정 ▲10경 배론성지 등 ‘제천 10경’을 소개해 본다.

신동민 기자 sdm@ktnbm.co.kr <자료제공 - 제천시청>

◆제1경 삼한시대의 유물 저수지 ‘의림지’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했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했는데, 그 첫 글자인 ‘의’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된 것.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구전에는 신라 진흥왕(540~575)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871m)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 전해진다.

그 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하여 연못 주위에 돌을 3층으로 쌓아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 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 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박의림 현감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제2경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사연 ‘박달재’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대중가요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고갯길로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의 애달픈 사랑으로 인해 박달재로 불리게 됐다. 사랑의 테마 관광지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으며, 최근 성각 스님이 공력을 들여 조각한 ‘목굴암’과 ‘오백나한상’의 전시관이 생겨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박달재는 천등산뿐만 아니라 인근에 인등산과 지등산도 함께 있어 天, 地, 人이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이며, 아득한 옛날 우리민족의 시원과 함께 하늘에 天祭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이다. 박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 자체가 가진 의미는 없다.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제3경 청풍명월의 영원한 연인 ‘월악산’

국립공원 월악산은 뛰어난 경관과 아름다운 계곡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 많아 ‘제 2의 금강산’ 또는 ‘동양의 알프스’라 불린다. 또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을 비롯한 문화유산이 많이 분포돼 있어 사계절 관광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월악산은 네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송계 쪽에서 보면 영봉,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암봉의 행진이 장엄하다. 맨 오른쪽 영봉은 특히 100m는 족히 될 법한 깎아지른 벼랑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중봉과 하봉, 두 형제를 아우른다. 특히 4월이면 한수면 민박마을에서 바라보는 영봉은 활짝 핀 벚꽃 가로수 위로 떠 있는 한 척의 거대한 범선으로 다가온다.

덕주골로 해서 덕주사와 마애불 거쳐 오른 능선 상에서 만나는 영봉은 또 다른 모습이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봉우리는 사람들을 단번에 압도하는 힘을 뿜어낸다.

◆제4경 호수 위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

1978년부터 시작된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제천시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마을이 수몰되자, 이곳에 있던 각종 문화재을 한 곳에 모아 문화재단지를 조성했다.

단지 내에는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 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 점이 원형대로 이전 복원되어 있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다.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 잡아 ‘청풍호반의 작은 민속촌’으로 불린다.

특히 문화재단지에서 바라다 보이는 청풍호는 충주 다목적댐 건설로 생성된 호수로, 뱃길 130리 중 볼거리가 가장 많고 풍경이 뛰어난 곳으로 내륙의 바다라고 한다. 특히 2000년 4월 15일에 개장된 수경분수(162m)에서 쏘아 올리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제5경 비단물결로 아름답게 수놓은 ‘금수산’

1015.8m의 금수산(錦繡山)은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를 지낸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단풍 든 이 산의 모습을 보고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라며 감탄, 산 이름을 금수산으로 바뀌었다고. 금수산 남쪽 마을 이름이 백운동인 것도 옛 산 이름의 흔적이다.

금수산은 북쪽으로는 제천 시내까지, 남쪽으로는 단양군 적성면 말목산(720m)까지 뻗어 내린 제법 긴 산줄기의 주봉이다. 주능선 상에는 작성산(848m), 동산(896.2), 말목산 등 700∼800m 높이의 산들이 여럿이고, 중간마다 서쪽으로 뻗은 지릉에도 중봉(885.6m), 신선봉(845.3m), 저승봉(596m), 망덕봉(926m) 등 크고 수려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제6경 아직 때 묻지 않은 원시림 ‘용하구곡’

송계계곡과 더불어 국립공원 월악산의 동편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아름다운 계곡으로, 옛날 어느 선비는 이곳을 찾아 돌아본 후 하늘과 땅도 비밀로 한 명소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용하계곡은 크게 용하골과 수문동골로 나뉘운다.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는 계곡의 아름다움은 용하골의 아홉 가지 비경으로 압축시켜 놓았다. 그리해 ‘용하구곡’이라 불러왔다. 구곡으로 지정한 것이 사람마다 제각기 달라 안타까우나 그만큼 이곳엔 수려한 많은 경관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문동골의 수문동폭포와 수곡용담, 병풍폭포 역시 용하구곡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빼어나며 신륵사 위로 영봉 등산로 상에 위치한 수렴선대 역시 비경이라 할 만하다.

제7경 심산유곡의 진수를 맛보는 ‘송계계곡’

월악산(1094m)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송계계곡’은 계곡물이 얼음처럼 차가와 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많은 피서객이 찾는 곳이다. 월악산 영봉과 덕주사가 있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이곳에 수백 년 묵은 노송들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바위와 어우러져 있다. 속리산 정2품 소나무와 모양이 흡사한 정3품 소나무가 있다 하여 더욱 그 유명세를 타는 곳이기도 하다. 망폭대 맞은 편으로는 이 옛길을 지키던 덕주산성 남문이 자리하고 있다.

◆제8경 비온 뒤 솟는 옥빛의 대나무순 ‘옥순봉’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옥순봉(玉筍峯)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있다. 제천10경 중 8경에 속하는 옥순봉은 지리적인 이유로 구담봉과 함께 단양8경에 속하기도 한다.

옥순봉은 조선 초 청풍군(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해 있었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단양 태생의 기녀 두향이 아름다운 옥순봉의 절경을 보고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지 않았다. 그러자 이황 선생이 단애를 이룬 석벽이 마치 대나무 순이 솟아오른 것과 같다 하여 옥순봉(玉筍峰)이라 이름 짓고, 석벽에 ‘단구동문’라 새겨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단원 김홍도는 정조의 초상화를 잘 그린 공로로 충청도 연풍의 현감에 임명됐다. 이때 1796년에 ‘옥순봉도’를 남겼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대표작인 중의 한 폭으로, 현재 보물 제782호로 지정돼 있다.

◆제9경 제천 근교의 여름피서지 ‘탁사정’

‘탁사정’은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나오는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아영(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아족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는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이라 했다. 그의 후손 윤근이 1925년 선조를 기리어 정자를 지었다. 솔숲 사이사이 수줍게 얼굴 내민 진달래꽃 향기로 탁사정은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을 펴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이 빚어낸 아름답고 강건한 바위들 사이로 시원한 물살이 기세 좋게 흘러내리고, 일렁이는 바람결을 따라 산벚꽃 이파리들이 점점이 흩날리며 떨어진다.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바위 한쪽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온종일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만 있어도 좋다.

◆제10경 한국 천주교 전파 진원지 ‘배론성지’

첩첩산중 계곡이 깊어 마치 배 밑바닥 같다고 해서 주론(舟獠) 또는 배론이라고 한다.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이며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옹기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황사영은 토굴에서 당시의 박해 상황과 천주교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집필하였는데, 이 원본은 현재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곳에 1855년 우리나라 최초로 사제배출을 위한 성요셉신학교가 만들어졌는데, 가르치던 외국인 신부와 배우던 신학생들은 병인박해 때 순교하였고, 신학교는 폐쇄됐다.

신동민 기자  sdm@ktnb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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