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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5화 펜팔친구를 찾아 떠난 세계일주세계적 문호 괴테를 느끼다

독일 뮌헨을 떠나 다음 여행지로 향한 곳은 프랑크푸르트였다.

기차를 타고 저녁 늦은 시각 프랑크푸르트 역에 도착하여 보니 프랑크푸르트 역 내에는 독특하게도 공룡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역 내 구경을 하고 3~4m 크기로 전시해 놓은 공룡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오니 눈앞에 펼쳐진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모습이 다른 유럽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보인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오래된 건물들을 철거 할 수 없고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법이 있다. 그래서 중세풍 및 근대의 유럽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건축물들이 많이 있지만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고층 건축물의 모습을 유럽에서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곳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현대적인 세련된 고층 빌딩들이 많이 존재하여 현대적인 모습의 도시를 느낄 수 있었다. 독일에서 유일하게 스카이라인이 존재하는 도시가 프랑크푸르트라고 한다. 독일 주변 국가의 유럽 사람들이 독일의 이런 현대적인 분위기를 느껴 보고 싶어서 일부러 프랑크푸르트에 놀러온다고 하니, 우리나라나 아시아 국가의 대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층 빌딩의 야경 모습이 이곳에서는 얼마나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인지 알 수 있다.

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괴테하우스였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 문호 괴테가 18세기 태어나고 자란 집을 그대로 박물관으로 만들었다고.

괴테하우스는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는데 살아생전 사용했던 물건들을 그대로 전시해두고 있었다. 법률관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던 괴테의 집은 4층짜리 집이었는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놓은 괴테의 유품들을 무너진 집을 복원한 후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했다.

괴테하우스 1층에는 부엌이 있었고 계단으로 2층에 올라오니 2층 한쪽에 앉아있던 안내원 아저씨는 나에게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를 해 줬다. 그러더니 한쪽 방을 가리키며 “할머니방”, “할아버지방”, “괴테 부자! 부자!” 라고 웃으며 말해주었는데 독일 아저씨가 한국인 관광객에게 익살스럽게 한국말로 말해주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관리인 아저씨에게 어떻게 그런 한국말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니, 이곳에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물어봐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관리인 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2층을 둘러보니 악기들이 전시되어있는 음악의 방과 손님들은 맞이했던 북경의 방이 있었다. 괴테하우스에 전시되어 있는 고풍스러운 물품들이 괴테와 그 가족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물건들을 그대로 전시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풍요롭게 지냈던 괴테의 유년시절을 느낄 수 있었다.

3층에는 괴테가 태어난 방이 있었고 4층의 다락방에서는 괴테의 대표작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과 ‘파우스트’ 등을 집필한 시인의 방이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괴테하우스를 나가던 중 1층의 작은 강당에서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연극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들어가 볼 수 없어 잠시 서서 구경을 하였는데, 아마도 그들은 괴테 하우스에서 괴테의 작품들은 연극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 주소 : http://blog.naver.com/dartanyang

유지원 기자  yjw@ktnb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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